새 공책을 사면 그는 언제나 공책의 표지 뒷면에 다음과 같은 릴케의 글을 적어놓았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책을 사면 으레 이 문장을 적었으니 언제라도 그 문장은 온전히 외울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
이런 면에서 인류가 비겁해진 결과, 삶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환상'이라고 하는 경험, 이른바 '영적 세계'라는 것, 죽음 등과 같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이,
예사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우리 삶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런 것들을 느끼는 데 필요한 감각들은 모두 퇴화되고 만 것이다.
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릴케의 이 문장은 그가 왜 밤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곱은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공책에다가 글을 쓰는지 잘 말해줬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써나갈 때 그는 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다.
그 지점에서 그의 문장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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